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 Op. 13 (1797~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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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8번은 베토벤이 빈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귀족들에게 후원을 받고, 살롱에서 연주하던 시절 작곡된 작품입니다. 이 시기,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를 12곡이나 썼는데, 그중 8번 ‘비창’은 초기 소나타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소나타 형식을 받아들이면서도, 화성을 통해 조를 자주 바꾸며 한 곡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의 폭을 넓혔기 때문입니다.
‘비창’(비장한, 몹시 슬픈)이라는 표제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으로,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8번 ‘비창’과 26번 ‘고별’에만 직접 표제를 붙였습니다.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였다는 것은 음악에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음악 연구자들은 악보 구매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려 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아노 한 대로 연주되는 소나타의 특성을 고려할 때, ‘비창’은 당시 베토벤이 가졌던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은 겉으로 볼 때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에 쓴 ‘슬픈 노래’로, 20대의 마지막 무렵에 느꼈을 법한 청년의 애상감이 곡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봄’ Op. 24 (180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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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소나타 5번은 베토벤이 의사들로부터 난청 치유불능 판정을 받기 전 작곡된 작품입니다. 이 시기, 베토벤은 아직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 곡은 주로 고전주의 음악에서 표현했던 양식화되고 객관적인 감정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의 음악으로 떠올리는 드라마틱하고 주관적인 감정 표현은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봄’이라는 표제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 곡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별칭으로 통용됩니다. 바이올린으로 문을 여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는 매우 청명하고 상쾌한 분위기로, 피아노는 밑에서 바이올린을 조용히 받쳐주다가 이후에는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주가 펼쳐집니다. 얼었던 시냇물이 흘러가는 느낌, 들판의 나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듯한 분위기를 전해주는 곡입니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월광’ Op. 27 No. 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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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14번은 베토벤에게 ‘청력 상실’이라는 고통이 엄습할 무렵 작곡된 작품입니다. 1801년(31세) 6월, 베토벤은 절친한 친구였던 의사 프란츠 베겔러(Franz Wegeler)와 목사 카를 아멘다(Carl Amenda)에게 편지로 자신의 청력 악화에 따른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이 무렵, 베토벤은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라는 여성을 사랑했는데, 서로 다른 신분 때문에 결혼하지는 못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바로 귀차르디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월광’이라는 표제는 시인이자 음악비평가였던 루트비히 렐슈타프(Rudwig Rellstab)가 1악장을 가리켜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 아래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라고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 곡에 붙인 정식 명칭은 ‘환상곡풍 소나타’로 자유롭고 시적인 정취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느리고 서정적인 1악장으로 시작해서, 2악장에서 밝고 산뜻한 분위기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가, 3악장에서 뜨거운 열정을 터트립니다. 서른한 살 베토벤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던 사랑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교향곡 3번 E♭장조 ‘영웅(에로이카)’ Op. 55 (1803~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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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3번은 베토벤이 난청 치유불능 판정을 받고 1802년(32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쓴 이후 작곡된 작품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청과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던 베토벤은 이때부터 귀족의 비위를 맞춰주던 산뜻한 선율과 형식을 파괴했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규모와 긴장감 넘치는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향곡 3번 ‘영웅’은 오늘날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하는 걸작의 서문을 연 곡입니다.
이 곡의 원제는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의 위대한 교향곡’입니다. 프랑스혁명을 지지했던 베토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를 모델로 삼아 작곡했는데,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베토벤은 악보의 표지에서 '보나파르트'라는 글자를 지웠고 '영웅적 교향곡, 위대한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이 곡은 연주 시간이 약 50분에 달하는데, 잔잔함과 강렬함을 반복하며 베토벤의 힘이 느껴집니다. 그중 2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 불리는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조곡으로 연주되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열정’ Op. 57 (1804~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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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23번은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작성한 이후 빈에 정착하여 활동한 시기에 작곡된 작품입니다. 빈에 정착한 시기부터 베토벤은 청력 장애로 내적인 갈등을 많이 겪었지만, 그의 창작열은 식지 않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소나타 23번은 교향곡 5번 ‘운명’과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는데, ‘운명’ 교향곡을 상징하는 동기 ‘따따따 딴~’이 1악장에서 왼손으로 연주됩니다. 따라서 두 곡은 장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태어난 ‘음악적 쌍둥이’라는 측면을 보여줍니다.
‘열정’이라는 표제는 함부르크의 출판업자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크란츠(August Heinrich Cranz)가 붙인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토벤도 당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열정’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곡으로, 당시 연주가 너무 어려워 악보 판매량이 저조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출판사에서 원래 혼자 치는 곡을 둘이 치는 곡으로 편곡하여 함께 출판했습니다. 1악장은 매우 여린 선율로 천천히 시작하지만 이어서 폭풍우가 치는 듯한 격렬한 악상이 전개됩니다. 2악장에서는 내면적 침잠, 평안함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3악장에서는 폭풍같은 열정의 고조를 드러내는 곡입니다.
교향곡 5번 c단조 ‘운명’ Op. 67 (1804~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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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5번은 베토벤의 이름이 유럽 전역에 확고히 퍼지고 창작의 열정이 타오를 때 작곡되었습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완성한 1804년(34세) 이 곡을 쓰다가 잠시 중단하는데, 그 이유는 요제피네 폰 다임(Josephine von Deym)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요제피네는 베토벤의 친구이자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을 헌정했던 프란츠 폰 브룬스비크 백작(Franz von Brunsvik)의 동생으로 1949년에 발견된 베토벤의 편지를 통해 요제피네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요제피네와의 사랑이 좌절되면서 1807년(37세) 다시 교향곡 5번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곡을 완성했습니다.
1악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4개의 음 ‘따따따 딴~’은 이 곡을 상징하는 동기*이자 베토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음입니다. ‘운명’이라는 표제는 후대 사람들의 작명으로, 안톤 펠릭스 쉰들러(Anton Felix Schindler)가 쓴 전기에서 베토벤이 이 동기에 대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전해진 것에서 얻게 된 이름입니다. 전 악장에 걸쳐 내적 긴장감과 투쟁이 극대화된 클래식 음악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동기 : 음악 형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61 (1806~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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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피아노 협주곡 4번, 교향곡 4, 5번을 작업하던 시기에 작곡된 작품입니다. 베토벤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바이올린과 비올라도 능숙하게 연주했는데, 이는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현악 4중주 곡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곡의 초연은 베토벤의 친구이자 당대 오스트리아의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란츠 클레멘트(Franz Clement)가 맡았습니다. 베토벤이 연주회 직전 독주 파트를 완성했기 때문에 클레멘트는 연습 없이 초견으로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연주 시간이 약 45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유례없이 긴 1악장 때문에 초연된 이후 30년 넘게 거의 연주되지 않다가 1844년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을 통해 최고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팀파니의 울림으로 힘차게 시작해 서정적인 2악장을 거쳐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카덴차로 마무리되는 곡입니다.
교향곡 6번 F장조 ‘전원’ Op. 68 (1807~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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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6번은 베토벤이 교향곡 작곡을 잠시 중단했다가 1807년(37세) 다시 작업을 시작해 교향곡 5번과 동시에 작곡한 곡입니다. 1808년, 베토벤은 본인의 지휘로 교향곡 5, 6번을 한꺼번에 초연했는데 5번은 ‘전투와 승리’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면, 6번은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을 보여줍니다. 난청에 시달렸던 베토벤에게 산책은 매우 중요한 일과였고, 유서를 썼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도 숲길을 거의 날마다 거닐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가 불편할 정도로 귀가 안 들리던 베토벤에게 자연은 위안을 주었고, 교향곡 6번 ‘전원’은 하일리겐슈타트 숲을 배경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이 곡에 직접 ‘전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5개 악장에 각각의 표제를 붙였습니다. 1악장은 ‘시골에 도착한 즐거운 기분’, 2악장은 ‘시냇가의 풍경’,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 폭풍우’, 5악장은 ‘목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감사와 기쁨’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곡입니다.
교향곡 9번 d단조 ‘합창’ Op. 125 (182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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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9번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정확한 제목은 ‘실러의 「환희에 붙여서」에 의해 4악장에 합창을 수록함’입니다. 「환희의 송가」로도 불리는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시는 18세기 후반 청년 지식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베토벤 역시 감동을 받아 20대 초반부터 이 시를 곡에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작곡 스케치는 1817년(47세) 즈음 이루어지는데, 당시 베토벤의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았고 그가 애착을 가졌던 조카의 양육권을 둘러싼 법정공방으로 상당히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교향곡 9번은 1824년(54세)이 되어서야 완성되는데, 창작 기간이 가장 긴 교향곡인만큼 베토벤의 모든 창작 기법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 곡은 1824년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당시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휘자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합창이 끝난 후 베토벤은 청중의 환호 소리조차 듣지 못해 여성 알토 가수가 그의 소매를 잡아 객석을 바라보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마지막 4악장의 합창으로 귀결되는 교향곡 9번 ‘합창’에는 인류를 향한 베토벤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내용 출처]
문학수 지음. 더 클래식. 1,바흐에서 베토벤까지. 파주 : 돌베개, 2014.
147-173p. 202-204p. 208-209p. 민은기 지음. 클래식 수업. 2,베토벤, 불멸의 환희. 서울 : 사회평론, 2019.
63-66p. 154-158p. 오지희 지음. 이 한 권의 베토벤. 서울: 예솔. 2020.
504-509p. 홍세원 지음. 서양음악사 2판. 서울 :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4.
[이미지 출처]
1. 줄리에타 귀차르디 / 151p. 민은기 지음. 클래식 수업. 2,베토벤, 불멸의 환희. 서울 : 사회평론, 2019.
2. 교향곡 3번 '영웅' 베토벤의 자필 표지와 서명 / 182p. 최은규 지음. 베토벤: 절망의 심연에서 불러낸 환희의 선율. 파주 : arte : 북이십일, 2020.
3. 요제피네 폰 다임 / 274p. 문학수 지음. 더 클래식. 1,바흐에서 베토벤까지. 파주 : 돌베개, 2014.
4. 교향곡 5번 '운명' 작곡 스케치 / 메이너드 솔로몬 지음 ; 김병화 옮김. 루트비히 판 베토벤 2. 파주 : 한길아트, 2006.
5. 산책하는 베토벤 / 280p. 문학수 지음. 더 클래식. 1,바흐에서 베토벤까지. 파주 : 돌베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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